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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자립 ⑮ 이제는 자유롭고 싶어요.

관리자
2022-06-14

[아버지로 부터의 폭력, 그리고 시각장애]

술만 먹으면 늘 가족들에게 폭력과 구타를 일삼던 아버지,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어머니, 그리고 이제 고등학생이 된 여동생까지 4명의 가족이 함께 살았습니다. 어릴 적엔 오른쪽 눈의 시력이 남아 있어 희미하게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안개 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땐 시력을 찾을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을 하던 과정을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눈이 안보이다 보니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고 그럴 때면 동네 이웃 어른들이나 파출소의 순경 분들 이 집을 찾아주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9살 때 사고로 남은 한쪽 눈의 시력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폭력으로 부터의 저항과 피신]


일반 학교를 다니다가 11살이 되어 특수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학교생활 중 기억이 남는 게 있다면 나와 다른 장애를 가진 저학년들을 위해 점자를 통해 책을 읽어주는 봉사와 길을 찾아 다니던 연습을 했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누군갈 도울 수 있었던 것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서울맹학교로 진학했습니다. 그곳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학교생활은 제 능력 이상의 것들을 요구하는 듯 하여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방학이 되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는 아버지께서 교통비가 많이 든다며 구박하거나 오지 말라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기숙사였기 때문에 집엘 갈 수 밖에 없고 사실 저도 그다지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졸업 이후에는 다시 대구로 오게 되었고 나와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구타는 계속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은 도를 지나친 수준이었습니다. 상상하기도 두렵습니다. 대들고 저항도 해봤지만 장애가 있는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산으로 가서 며칠을 굶어가며 지내기도 했었고 이웃집에 피신해 있기도 했습니다. 가출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로부터의 피신이었습니다. 경찰을 불러 보기도 했고 가족 간의 문제라 그들이 와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땐, 차라리 저를 잡아가 주시라고까지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체험홈을 알게 되다]

이런 생활들이 반복되다 보니 집에 있는 것이 싫어 안마를 가르쳐 주는 학원에도 나가보았고 체험홈으로 오기 전에는 당시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시각장애인들이 다니던 교회에서 일시적인 주거지원과 기타 지원들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지게 되고 집으로는 돌아가기 싫어 이 곳 체험홈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들어오게 된 것 같겠지만 가족이 없는 곳에서 혼자 살고 싶었습니다. 안마학원은 내가 원하던 것은 아니었기에 체험홈으로 나와서는 그만두었습니다.

사실은 아직 자립이라는 것에 대한 뚜렷한 계획도 내가 뭘 해야 할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은 있지만 활동보조 시간과 관리도, 금전적인 여유도, 사람들을 만나서 알아가는 과정들도 벅차기만 합니다. 허나 분명한 것은 혼자만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무엇보다 위험이나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습니다. 간혹 아버지가 저를 찾아와 해코지 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갓 피어난 희망]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안정적인 주거공간에서 누군가에게 위협 받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능력으로 대학에 진학하여 사회복지와 관련 된 공부를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묵자를 점자로 옮기고 오기 된 점자를 바로 잡는 점역교정사 자격증도 따고 싶습니다. 활동보조 시간을 늘려 외출도 많이 하고 싶고 돈을 모아 시각장애인 보조기구(브레일 노트, 한소네)를 구입하고 싶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싶습니다. 아직은 활동보조 시간이 적어 혼자 나가는 것이 힘이 듭니다.

보조인이 오기 전에는 주로 인터넷 신문의 기사를 읽고 지내거나 (다른 것은 다 봐도 정치면은 잘 보질 않습니다. 그들의 지키지 않는 공약들이 난무하니까요)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하다보니 청소나 밥을 하는 정도는 잘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를 가지고 놀고 간단하게 수리를 하는 것도 할 수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것과 취미생활로 식물을 키우는 것도 좋아합니다.

이렇듯 저는 그저 평범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이런 희망들을 조금씩 키워 나가고 싶습니다.


2014년 봄,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