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싯(Dixit) 보드게임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카드를 보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맞히는 게임입니다. 딕싯은 라틴어로 “~말하다”라는 뜻으로 이 게임은 독일, 프랑스 등 각 국에서 ‘올해의 게임’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만담꾼 다섯 분을 모시고 게임을 즐기며 나눈 대화를 간단하게나마 글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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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담꾼의 은밀한 개인정보
모닝 - 본인은 아니나 집안이 살만함. 뇌병변장애. 언어장애. 남성. 쾌활+명랑.
커피소년 - 커피중독. 일중독. 천상천하 유아독존. 지체장애. 이제 30대. 말 많음.
금복주 - 10대 때 흡연과 음주를 두루 섭렵. 적지 않은 나이. 지체장애. 요즘 집 마련 걱정 매우 큼.
므흣 - 잘 흘림. 주로 느끼함 담당. 지체장애인. 우수한 골반. 남성. 서울사람.
한잔녀 _ 어제도 오늘도 술자리. 발가락. 얼리어답터. 지체장애. 여성. 특기 막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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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면,
“내가 태어났을 때, 내가 자랄 때 가족들은 또는 세상은 이렇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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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_ 어렸을 때는 주로 치료실을 다녔던 기억 밖에 없어. 일상이 딱 정해져 있었어. 아침 일찍 치료실 가서 하루 종일 있고. 그게 전부였으니까. 내가 자유롭게 지낼 시간이 없었지. 그런 기억과 이 이미지가 비슷해. 정해진 일정에 맞게 산다고 했잖아. 태엽을 감아야 되는데, 태엽을 감는 것도 부모님이지. 당연히 움직일 수 있는데도 이미 정해져 있고 말야.
금복주 _ 내는 시골인데, 옛날에 치료실이란 게 있나. 아예 그냥 집에 나나뿌지. 아파도 그냥 죽으면 죽고, 살마 산다 뭐 이런 식으로. 9살 되가꼬 시내 병원에 처음 한 번 가보니까 병원 의사가 하는 말이 ‘이노무 병은 보기 드물다’, ‘우리나라에선 못 고친다, 미국 가마 가망이 약간 있지 싶은데…’이카데. 밥도 못 묵던 시절인데 그런 게 어딨노. 안 갔지. 시골에서 어렸을 때 있다 보니까, 밖에 나오지도 못하고, 맨날 집에만 있고. 동네주민들이 오매 가매 보고 이 집은 걷지도 못하는 아가 있어서 골치 아프다… ‘저 뱅신은 지기뿌지 말로 키우노’ 이런 소리도 많이 들었고. ‘약이라도 미기가 지기뿌지 키우마 머하노’…. 부모님은 자기가 또 우애 그라노. 숙모가 한 날은 하는 말이 엄마보고 ‘키우지 말고 갔다 버리라’,‘ 비 많이 올 때, 장마질 때 냇가에 물이 마이 내리 가니까 던져버리면 떠내려간다’고…
커피소년 _ 태어났을 땐 장애가 없었어. 제가 맏이고 아들이다 보니까 주변에서는 축하해 주고 좋아했다고 하더라. 백일 지나서 장애를 가지게 되었는데, 황달도 오고 발달도 늦어지고 하다보니까 병원에 가니까 장애라고 했데. 그 때부터 점집에도 갔다가, 한의원도 갔다가, 병원도 갔다가… 3년 동안 침만 맞기도 했고,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이런 것들을 어렸을 때부터 받았지. 그래도 사는 게 늘 이렇다 보니까 장애인이라는 걸 정작 나는 몰랐지. 사는 게 그냥 이랬으니까. 근데 일곱 살 땐가? 동생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걔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고 놀리는 거야. 그 때 ‘아, 내가 장애인이구나’라고 자각했어.
므흣 _ 태어나고 제대로 젖도 못 먹고, 집안 미움을 받았다고 하더라. 한 달 뒤에 황달인가, 그거 있어서 장애를 얻고 집에선 더 싫어했지. 집 안에서 잘 어울리거나 하지 못했어. 부모님은 병원도 다니고 이것저것 알아보려고 했었는데, 1년 중에 몇 번 그냥 병원가고… 그런 기억 밖에 없어. 집 안에만 있으면서 밖에만 바라보고 있는 그런 애. 그래도 나름 수도권이어서 볼 것도 많았을 테지만 난 그냥 집 안에만 있었어. 아, 나도 어렸을 때 수녀따라 미국 갈 뻔했어. 왜온 진 모르겠는데, 미국 가자고 하더라고. 내 정해진 영역 안에서만 살고, 풍경이나 이런 건 보고만 있고, 넘어가질 못하니까. 그런 이미지같어. 슬프잖아, 얘가 지금 못 나오자나~ 좀 더 큰 세상으로 가야 하는데… 미국? ㅋㅋ
커피소년 _ 따라가지~ 왜~ 유학파 될 뻔했네.ㅋㅋ
한잔녀 _ 나도 황달. 어렸을 땐 굿도 하고, 침도 맞고, 치료도 하고 그랬지. 나도. 수녀나 스님, 종교사람은 아니고 어쨌든 미국가자고 했었는데. 그 때 미국가면 나는 낫는다 캐서. 근데 미국가자 캤을 때 단칸방에서 사는 데 말이 대나. 이 그림은 체스 두는 건데, 체스판은 내인생이고 남녀 두 사람은 부모님. 말을 놓는 것에 따라서 내가 사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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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큰 사건, 또는 기억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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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복주 _ 열 네 살 때지. 옛날에 구루마 아는지 모르겠다. 쪼매나게 사람 하나 탈 수 있게 만들어서 발통 달아가꼬 나무 대가지 고 앞에 끈 달아가 지고 끌고 노는 거 시골에 있었어. 그걸로 그 때는 친구들이랑 놀러도 댕기고 했어. 산에는 그걸론 못 가니까 친구들이 내 업어서 같이 갔고. 옛날에는 시골에 애들도 어른이 담배 피우니까 그것도 따라 피우고, 술도 따라 묵고.(에!!!!!???) 아들이 그걸 구해와서 같이 피고, 묵고. 여름에는 담배 피면 모기가 안 달라드니까 좋아. 담배도 그 때 배았지. 한 집에 식구가 8명, 10명 되니까 또래가 많았지. 그 때가 제일 좋았지. 그러다가 우리 형님이 포항으로 직장이 되면서 가족들하고 시내로 이사 갔지. 진짜 그 당시에는 아파트 쪼매나거든. 그냥 뭐 문 하나 닫아놓아뿌마 완전 새장 한가지지. 하도 갑갑아가 베란다로 가면, 밑에 지나가던 사람이 날 몇 번 봤던 모양인가, 날 보고 ‘이 우에 집에는 이상한 사람이 있드라’, ‘사람이 희안하다’… 소문을 내는거라, 그카니까 우리 형님이 창피하다고 베란다도 못 나가게 하더라. 때리기도 때리고. 거서 10년 정도 살았는데 완전 깜빵이지. 답답끼는 답답코…. 옛날에는 마당이라도 있으니, 나가보기라도 했는데. 집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안에서도 움직이마 안되고. 누구 말마따나 삼시세끼 밥만 묵고 그냥 개새끼였지. 죽어뿔라고 전기선으로 목 메달기도 하고, 쥐약도 먹고 했는데… 그라고 나니까 안동에 시설로 보내데. 가니까 시설이 대단히 편하데. 마당도 나갈 수 있고. 시내도 한번씩 나가고. 하기야 그카다 시설에서 대구 올라고 나갈라카이 부모님이랑 원장이 못 나가게 하더라 마는.
커피소년 _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장애인만 있는 특수학교에 입학했어. 근데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문제에서 고등학교를 특수학교로 갈지, 일반학교에 입학할지를 결정하는 시기가 있었거든. 그 시기가 내겐 큰 사건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일반학교 간 것이 잘 들어간 것 같애. 일반학교 가서 좀 더 넓은 세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있었고. 인간관계에서 특히 많이 배웠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 대학가면서는 고등학교 때 그런 고민들이 많이 도움이 됐었지.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거든. 체력적으로나, 준비나. 왕따는 아닌데 비스무리한 걸 당하기도 했었고. 만약 특수학교에 그냥 있었으면 사회생활을 잘 못했을 것 같애. 그 때도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은 결정과 책임지는 걸 네가 해야 한다고 말씀하기도 하셨고. 그 때 결심이 지금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아. 그 때 선생님이 ‘한번 가면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생활해야 한다’라고 했어.
므흣 _ 결과부터 말하면 대학교 오면서 집에서 나오게 된 사건인데 나는. 왜냐면 집에서 아버지 때문에 가정폭력이 좀 있었어. 가장 큰 이유는 폭력을 피하려고 그런 심리 때문에 나오게 되었는데… 그게 내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이었어. 집으로부터의 독립. 그런 이유로 나오게 되어서 인생? 인생이라긴 그래도 삶이 좀 많이 바뀌었어. 계기점이 된 것 같애. 기숙사 살았었으니까. 이 카드는 간단하게 골랐는데, 안 좋은 상황 속에서 분노의 횃불, 독립의 횃불을 들고. 집에 안 가겠단 횃불? 횃불을 거꾸로 보면 탑같이 생겼잖아, 이걸 거꾸로 들고 이제 달라지겠단 의지라고 할까. 그랬었단 거지.
한잔녀 _ 집에서 시설 가서 살아라고 하고, 나는 혼자 산다 했는데 그 때 인터넷 싸이월드로 알았던 오빠 통해서 센터를 알게 됐어. 그 오빠가 학교 선배기도 했거든. 부모님이 시설 가라고 해서 싫다고 하고, 혼자 살거라고 방법을 찾고 있을 때 마침 그 오빠를 만났고, 센터를 알게 된 사건이 제일 컸어.
커피소년 _ 이런 얘길 누가 하더라고. 바닷가에 보면 잡아온 물고기를 경매를 하잖아. 근데 항상 그 마을 어부들은 죽은 청어만을 잡아와서 팔았는데, 어느 날 한 어부가 싱싱한 산 청어를 잡아와서 판거야. 불티나게 팔렸지.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게 할 수 있었냐 라고 물으니, 바다메기라는 청어의 천적이 있데. 그걸 배 수조에 몇 마리 집어넣었다라고 하더라고. 청어만 몇 천 마리 있을 때에는 스스로 죽었는데, 수천마리 청어 안에 천적 메기를 넣음으로써 몇 마리 정도는 잡아 먹힐지 모르지만 나머지 청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막 돌아다니더라는 거지. 나의 천적도 있고, 다양한 물고기들이 있잖아.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고민하고 적응해 나가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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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결국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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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_ 부자가 될 것이다. ㅎㅎ 외부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거야.
커피소년 _ 지금도 성을 한 채 갖고 있는데, 더 좋은 데 살고 싶은 건 아니고? 더 높은 집 값을 원하는 거 아냐? ㅎ
커피소년 _ 생각해보면 나는 하고 싶은 건 했던 것 같어. 목표나 이런 게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한 것 같은 인생을 살았던 것 같고. 내 삶에 모토가 즐겁게 살자는
것이기 때문에. 즐겁게 살려고 노력 할 것 같아.
한잔녀 _ 세상이 다 주목하는 사람. 장판에서건 어디서건 주목받고 지지받을 수 있는 사람. 결국 나는 이렇게 될 거야.
모닝 _ 진격의 거인!?
커피소년 _ 혼자 다 해먹겠다!
금복주 _ 내는 옛날에 겪어왔던 일들을 모두 싹 다 이자뿌고, 앞으로는 잘 살아봐야제. 가족한테 두 번 다시 그런 고통 안 받고, 도움도 안 받고, 내 혼자……. 독립하고, 방 얻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못 가본 데도 좀 가보고. (이 그림은)앞으로를 그리고 있는거야. 백지였다가 그리는 거.
2013년 여름,
센터 사무실 한 구석에서
※딕싯(Dixit) 보드게임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카드를 보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맞히는 게임입니다. 딕싯은 라틴어로 “~말하다”라는 뜻으로 이 게임은 독일, 프랑스 등 각 국에서 ‘올해의 게임’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만담꾼 다섯 분을 모시고 게임을 즐기며 나눈 대화를 간단하게나마 글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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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담꾼의 은밀한 개인정보
모닝 - 본인은 아니나 집안이 살만함. 뇌병변장애. 언어장애. 남성. 쾌활+명랑.
커피소년 - 커피중독. 일중독. 천상천하 유아독존. 지체장애. 이제 30대. 말 많음.
금복주 - 10대 때 흡연과 음주를 두루 섭렵. 적지 않은 나이. 지체장애. 요즘 집 마련 걱정 매우 큼.
므흣 - 잘 흘림. 주로 느끼함 담당. 지체장애인. 우수한 골반. 남성. 서울사람.
한잔녀 _ 어제도 오늘도 술자리. 발가락. 얼리어답터. 지체장애. 여성. 특기 막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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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면,
“내가 태어났을 때, 내가 자랄 때 가족들은 또는 세상은 이렇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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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_ 어렸을 때는 주로 치료실을 다녔던 기억 밖에 없어. 일상이 딱 정해져 있었어. 아침 일찍 치료실 가서 하루 종일 있고. 그게 전부였으니까. 내가 자유롭게 지낼 시간이 없었지. 그런 기억과 이 이미지가 비슷해. 정해진 일정에 맞게 산다고 했잖아. 태엽을 감아야 되는데, 태엽을 감는 것도 부모님이지. 당연히 움직일 수 있는데도 이미 정해져 있고 말야.
금복주 _ 내는 시골인데, 옛날에 치료실이란 게 있나. 아예 그냥 집에 나나뿌지. 아파도 그냥 죽으면 죽고, 살마 산다 뭐 이런 식으로. 9살 되가꼬 시내 병원에 처음 한 번 가보니까 병원 의사가 하는 말이 ‘이노무 병은 보기 드물다’, ‘우리나라에선 못 고친다, 미국 가마 가망이 약간 있지 싶은데…’이카데. 밥도 못 묵던 시절인데 그런 게 어딨노. 안 갔지. 시골에서 어렸을 때 있다 보니까, 밖에 나오지도 못하고, 맨날 집에만 있고. 동네주민들이 오매 가매 보고 이 집은 걷지도 못하는 아가 있어서 골치 아프다… ‘저 뱅신은 지기뿌지 말로 키우노’ 이런 소리도 많이 들었고. ‘약이라도 미기가 지기뿌지 키우마 머하노’…. 부모님은 자기가 또 우애 그라노. 숙모가 한 날은 하는 말이 엄마보고 ‘키우지 말고 갔다 버리라’,‘ 비 많이 올 때, 장마질 때 냇가에 물이 마이 내리 가니까 던져버리면 떠내려간다’고…
커피소년 _ 태어났을 땐 장애가 없었어. 제가 맏이고 아들이다 보니까 주변에서는 축하해 주고 좋아했다고 하더라. 백일 지나서 장애를 가지게 되었는데, 황달도 오고 발달도 늦어지고 하다보니까 병원에 가니까 장애라고 했데. 그 때부터 점집에도 갔다가, 한의원도 갔다가, 병원도 갔다가… 3년 동안 침만 맞기도 했고,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이런 것들을 어렸을 때부터 받았지. 그래도 사는 게 늘 이렇다 보니까 장애인이라는 걸 정작 나는 몰랐지. 사는 게 그냥 이랬으니까. 근데 일곱 살 땐가? 동생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따라간 적이 있는데, 걔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고 놀리는 거야. 그 때 ‘아, 내가 장애인이구나’라고 자각했어.
므흣 _ 태어나고 제대로 젖도 못 먹고, 집안 미움을 받았다고 하더라. 한 달 뒤에 황달인가, 그거 있어서 장애를 얻고 집에선 더 싫어했지. 집 안에서 잘 어울리거나 하지 못했어. 부모님은 병원도 다니고 이것저것 알아보려고 했었는데, 1년 중에 몇 번 그냥 병원가고… 그런 기억 밖에 없어. 집 안에만 있으면서 밖에만 바라보고 있는 그런 애. 그래도 나름 수도권이어서 볼 것도 많았을 테지만 난 그냥 집 안에만 있었어. 아, 나도 어렸을 때 수녀따라 미국 갈 뻔했어. 왜온 진 모르겠는데, 미국 가자고 하더라고. 내 정해진 영역 안에서만 살고, 풍경이나 이런 건 보고만 있고, 넘어가질 못하니까. 그런 이미지같어. 슬프잖아, 얘가 지금 못 나오자나~ 좀 더 큰 세상으로 가야 하는데… 미국? ㅋㅋ
커피소년 _ 따라가지~ 왜~ 유학파 될 뻔했네.ㅋㅋ
한잔녀 _ 나도 황달. 어렸을 땐 굿도 하고, 침도 맞고, 치료도 하고 그랬지. 나도. 수녀나 스님, 종교사람은 아니고 어쨌든 미국가자고 했었는데. 그 때 미국가면 나는 낫는다 캐서. 근데 미국가자 캤을 때 단칸방에서 사는 데 말이 대나. 이 그림은 체스 두는 건데, 체스판은 내인생이고 남녀 두 사람은 부모님. 말을 놓는 것에 따라서 내가 사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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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큰 사건, 또는 기억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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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복주 _ 열 네 살 때지. 옛날에 구루마 아는지 모르겠다. 쪼매나게 사람 하나 탈 수 있게 만들어서 발통 달아가꼬 나무 대가지 고 앞에 끈 달아가 지고 끌고 노는 거 시골에 있었어. 그걸로 그 때는 친구들이랑 놀러도 댕기고 했어. 산에는 그걸론 못 가니까 친구들이 내 업어서 같이 갔고. 옛날에는 시골에 애들도 어른이 담배 피우니까 그것도 따라 피우고, 술도 따라 묵고.(에!!!!!???) 아들이 그걸 구해와서 같이 피고, 묵고. 여름에는 담배 피면 모기가 안 달라드니까 좋아. 담배도 그 때 배았지. 한 집에 식구가 8명, 10명 되니까 또래가 많았지. 그 때가 제일 좋았지. 그러다가 우리 형님이 포항으로 직장이 되면서 가족들하고 시내로 이사 갔지. 진짜 그 당시에는 아파트 쪼매나거든. 그냥 뭐 문 하나 닫아놓아뿌마 완전 새장 한가지지. 하도 갑갑아가 베란다로 가면, 밑에 지나가던 사람이 날 몇 번 봤던 모양인가, 날 보고 ‘이 우에 집에는 이상한 사람이 있드라’, ‘사람이 희안하다’… 소문을 내는거라, 그카니까 우리 형님이 창피하다고 베란다도 못 나가게 하더라. 때리기도 때리고. 거서 10년 정도 살았는데 완전 깜빵이지. 답답끼는 답답코…. 옛날에는 마당이라도 있으니, 나가보기라도 했는데. 집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안에서도 움직이마 안되고. 누구 말마따나 삼시세끼 밥만 묵고 그냥 개새끼였지. 죽어뿔라고 전기선으로 목 메달기도 하고, 쥐약도 먹고 했는데… 그라고 나니까 안동에 시설로 보내데. 가니까 시설이 대단히 편하데. 마당도 나갈 수 있고. 시내도 한번씩 나가고. 하기야 그카다 시설에서 대구 올라고 나갈라카이 부모님이랑 원장이 못 나가게 하더라 마는.
커피소년 _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장애인만 있는 특수학교에 입학했어. 근데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문제에서 고등학교를 특수학교로 갈지, 일반학교에 입학할지를 결정하는 시기가 있었거든. 그 시기가 내겐 큰 사건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일반학교 간 것이 잘 들어간 것 같애. 일반학교 가서 좀 더 넓은 세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있었고. 인간관계에서 특히 많이 배웠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 대학가면서는 고등학교 때 그런 고민들이 많이 도움이 됐었지.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거든. 체력적으로나, 준비나. 왕따는 아닌데 비스무리한 걸 당하기도 했었고. 만약 특수학교에 그냥 있었으면 사회생활을 잘 못했을 것 같애. 그 때도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은 결정과 책임지는 걸 네가 해야 한다고 말씀하기도 하셨고. 그 때 결심이 지금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아. 그 때 선생님이 ‘한번 가면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생활해야 한다’라고 했어.
므흣 _ 결과부터 말하면 대학교 오면서 집에서 나오게 된 사건인데 나는. 왜냐면 집에서 아버지 때문에 가정폭력이 좀 있었어. 가장 큰 이유는 폭력을 피하려고 그런 심리 때문에 나오게 되었는데… 그게 내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이었어. 집으로부터의 독립. 그런 이유로 나오게 되어서 인생? 인생이라긴 그래도 삶이 좀 많이 바뀌었어. 계기점이 된 것 같애. 기숙사 살았었으니까. 이 카드는 간단하게 골랐는데, 안 좋은 상황 속에서 분노의 횃불, 독립의 횃불을 들고. 집에 안 가겠단 횃불? 횃불을 거꾸로 보면 탑같이 생겼잖아, 이걸 거꾸로 들고 이제 달라지겠단 의지라고 할까. 그랬었단 거지.
한잔녀 _ 집에서 시설 가서 살아라고 하고, 나는 혼자 산다 했는데 그 때 인터넷 싸이월드로 알았던 오빠 통해서 센터를 알게 됐어. 그 오빠가 학교 선배기도 했거든. 부모님이 시설 가라고 해서 싫다고 하고, 혼자 살거라고 방법을 찾고 있을 때 마침 그 오빠를 만났고, 센터를 알게 된 사건이 제일 컸어.
커피소년 _ 이런 얘길 누가 하더라고. 바닷가에 보면 잡아온 물고기를 경매를 하잖아. 근데 항상 그 마을 어부들은 죽은 청어만을 잡아와서 팔았는데, 어느 날 한 어부가 싱싱한 산 청어를 잡아와서 판거야. 불티나게 팔렸지.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게 할 수 있었냐 라고 물으니, 바다메기라는 청어의 천적이 있데. 그걸 배 수조에 몇 마리 집어넣었다라고 하더라고. 청어만 몇 천 마리 있을 때에는 스스로 죽었는데, 수천마리 청어 안에 천적 메기를 넣음으로써 몇 마리 정도는 잡아 먹힐지 모르지만 나머지 청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막 돌아다니더라는 거지. 나의 천적도 있고, 다양한 물고기들이 있잖아.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고민하고 적응해 나가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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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결국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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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_ 부자가 될 것이다. ㅎㅎ 외부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거야.
커피소년 _ 지금도 성을 한 채 갖고 있는데, 더 좋은 데 살고 싶은 건 아니고? 더 높은 집 값을 원하는 거 아냐? ㅎ
커피소년 _ 생각해보면 나는 하고 싶은 건 했던 것 같어. 목표나 이런 게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한 것 같은 인생을 살았던 것 같고. 내 삶에 모토가 즐겁게 살자는
것이기 때문에. 즐겁게 살려고 노력 할 것 같아.
한잔녀 _ 세상이 다 주목하는 사람. 장판에서건 어디서건 주목받고 지지받을 수 있는 사람. 결국 나는 이렇게 될 거야.
모닝 _ 진격의 거인!?
금복주 _ 내는 옛날에 겪어왔던 일들을 모두 싹 다 이자뿌고, 앞으로는 잘 살아봐야제. 가족한테 두 번 다시 그런 고통 안 받고, 도움도 안 받고, 내 혼자……. 독립하고, 방 얻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못 가본 데도 좀 가보고. (이 그림은)앞으로를 그리고 있는거야. 백지였다가 그리는 거.
2013년 여름,
센터 사무실 한 구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