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사람센터는 내 삶의 원동력”
김봉조(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사)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1979년 대구에서 태어났어요. 고향은 구미지만,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대부분을 대구에서 보냈어요. 중학교 3학년까지는 부모님, 할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학교는 대구 보건학교를 다녔습는데,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서였어요. 그렇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어요. 글도 모르던 상태였지만, 13살에 초등학교 5학년으로 편입해 학교 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엔 지금처럼 전동 휠체어가 없어서 수동 휠체어를 썼어요. 할머니랑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가 휠체어를 밀어주셨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연세가 있으셔서 힘들어하시니까, 가끔은 친구들이 도와주기도 했어요. 그 시절은 시설이나 지원이 전혀 없어서 그냥 악으로 버텼어요. 아버지가 술 드시면 폭력을 행사했어요. 어머니는 외국에 돈 벌러 가셨는데 그때부터 연락이 잘 안됐어요. 저는 삼촌 집에, 형은 부산 이모 집에, 흩어져 살았죠.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든 시기였죠.

 

장애인운동을 만난 건 대학에 진학하면서였죠?

대학은 꼭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엄두도 못 냈어요. 그러던 중 제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면서 후원자가 생겼어요. 자원봉사센터 분이 영남일보에 기사를 써주셨고, 그 기사를 보고 연락온 분이 등록금을 도와주셔서 98학번으로 대구대에 들어갔어요. 당시에는 정말 꿈만 같았죠. 학부제로 들어가서 지역사회개발학과에 소속됐는데, 2년 뒤 사회복지학과로 옮겼어요. 후배인 노금호 소장이 장애인권 동아리(대구대학교 레츠)를 만들자고 했고, 저도 참여했죠. 중도에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끝까지 붙잡히고 설득 당해서 결국 같이 하게 됐어요. 노금호가 제일 앞에서 싸우고 힘이 됐어요.

 

졸업하고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바로 만들게 된 건가요?

노금호가 소장이 졸업하면서 이야기를 꺼냈어요. 당시 저는 사실 유학을 꿈꾸고 있었거든요. 시카고대학 대학원 초청도 받았었어요.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고민이 많았죠. 그래도 노금호가 진지하게 제안하는 걸 보면서 “아, 같이 해야겠다”고 의기투합 했어요. 지역 단체의 사무실 한쪽을 빌려 쓰면서 시작했는데, 눈치가 많이 보였어요. 그때는 사람도 돈도 없고, 다 의지로 버텼던 시절이었는데, 빨리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다녔어요.

 

2006년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그때는 정말 죽기 살기로 했어요. 활동보조는 자원봉사랑은 전혀 달라요. (활동보조는) 내가 필요한 걸 당당하게 (상대방에게) 요구할 수 있는 제도라서 꼭 필요했어요. 삭발도 하고, 경찰하고 싸우고, 바닥을 기기도 했어요. 아프고 힘들었지만 “이건 꼭 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버텼어요.

 

제도 도입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활동보조서비스도 처음엔 체계가 부족했어요. 활동지원사들이 그냥 아르바이트처럼 몇 시간 왔다 갔다 하기도 했어요. 교육도 잘 안 됐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죠.

 

활동보조서비스, 자립주택지원사업 등 지원하는 사업이 늘어나면서 규모도 커졌습니다.

작을 땐 단합이 잘 됐는데, 커지면서는 대화를 어떻게 이어갈지, 신뢰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지가 고민됐어요. 규모가 커진다는 게 꼭 좋은 것 만은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사람센터는 항상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곳이라서, 커진 규모에 따라 또 잘 적응해가는 것 같아요.

 

김봉조 이사에게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사람센터는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에요. 제가 없어도 장애인운동이 계속될 수 있도록 활동가들을 키우는 게 제 꿈이거든요. 다른 지역 활동가들이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보면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해요. 상경 집회가 있으면 다른 지역은 그냥 지하철 타고 오는데, 대구는 버스를 빌려서 서울까지 올라가요. 그러고는 같이 집회하고, 밥 먹고, 자고 내려와요. 그만큼 단결력이 강하다고 평가받았어요.

 

앞으로 사람센터가 어떤 모습이 되길 바라시나요?

자본주의를 무시할 수 없어요. 활동가들이 먹고 살 만큼 조건이 보장이 돼야 더 많은 활동이 가능하죠. 제가 타는 휠체어 하나만 해도 800만 원이 넘어요. 돈이 있어야 좋은 휠체어 타고 다니면서 열심히 활동할 수 있잖아요. 좋은 장비와 이동수단을 갖추고, 언제든 투쟁과 활동에 나설 수 있어야죠. 사람센터가 20년 동안 버텨온 힘은 모든 회원과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이에요. 앞으로 30년, 40년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죠. 저도 열심히 할께요,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