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20~30대 뼈를 묻은 곳, 권리는 생명이다!”
김시형(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팀장)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1984년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태어났어요. 아동기, 유아기 때 잠깐 ‘바오로 요한 2세의 집’이라고 해서 천주교 재단이 운영하는 시설에 다녔어요. 부모님 말씀으로는 일주일 갔다가 주말에 오고, 또 일주일 갔다가 주말에 오고… 이런 식으로 다녔다고 해요. 제가 하도 울고 부모님도 심리적으로 힘드셔서 그만 데리고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장애를 가지게 된 건 100일 지나고 황달 때문이었다고 해요. 3남매 중 장남이고요. 밑에 여동생이 3살 차이, 막내 남동생은 저랑 12살 차이가 나요.

 

시설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이 남아 있나요?

물리치료 받을 때 많이 아팠던 기억, 또 걷지를 못해서 복도에서 대굴대굴 굴러다니던 기억이 있어요. 딱딱한 바닥에 머리 부딪히면서 굴렀고, 아버지를 기다렸던 기억도 있어요. 수녀님 중에 좋은 분도 있고, 무서운 분도 있었던 게 기억나요. 그 이후로는 시설 생활은 없었고, 수성구 아파트 단지 안에 있던 큰 장애인복지관을 다니면서 지냈어요. 그때 형석(하형석)이도 알게 됐죠.

 

학창 시절 생활은 어땠나요?

대구보건학교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졸업한 다음에는 일반 고등학교(경북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사실 처음엔 대구고등학교에 지원했는데 교감선생님이 입학을 거부했어요. 장애인이 다닐 수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2003년 대구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원래는 정보통신학부에 입학했는데, 이후 사회복지학과을 복수전공했어요. 처음엔 가톨릭 동아리에 들어갔고, 이후 기숙사 동아리, 그리고 사범대 특수교육과에 있던 장애학생복지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학교 선배였던 윤상원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정당한 편의 제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경험했고, 차별적이지 않게 인간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보았어요. 거기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2005년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창립할 때는 학생이었는데, 알고 있었나요?

네, 알고 있었어요. 대학교 1학년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장애인운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노금호 소장도 만나면서 창립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창립 총회에는 참여하지 않았어요. 사진에도 없어요. 그때는 제가 대장교연(대구대학교 장애인대학생 교육권 확보를 위한 연대회의)을 맡고 있어서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센터 창립 소식은 들었지만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어요.

 

2006년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운동도 기억하시나요?

학교 학생들 조직해서 같이 참여했어요. 당시 구호가 '장애인에게 000은 권리다', "장애인에게 000은 생명이다” 였어요. 투쟁을 통해 경찰하고 싸우는 방법 같은 것도 배우게 됐어요. 그때 43일 동안 투쟁했는데, 저는 마지막 무렵 사회복지 실습 때문에 서울(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올라갔어요. 서울 가는 도중에 성과(합의) 소식을 들었어요.

 

졸업 후 바로 사람센터에서 일을 시작하셨나요?

아니요. 2008년 졸업을 앞두고 처음엔 북구에 자립생활센터를 만들려고 했어요. 혼자는 못하니 형석이, 기태랑 셋이서 모여서 준비했는데 결국 구체화는 못 하고 무산됐어요. 이후 사람센터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받은 첫 월급은 40만 원이었어요. 그 때 최저임금보다 낮았죠. 처음 맡은 업무는 활동보조 중개기관 업무였어요.

 

그 후에는 센터에서는 어떤 업무를 맡았나요?

홍보 업무, 웹 서버 관리 같은 것도 했고요, 자조모임을 맡기도 했어요. 2009년부터 권익옹호 활동을 하면서 지금은 권익옹호팀 팀장을 맡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동성로 한옥 스타벅스에 경사로를 설치한 거에요. 권익옹호팀은 직접 현장에 다니기도 하고, 제보도 받아서 개선활동을 하거든요. 면담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시위도 하면서 결국은 이뤄낸 거죠. 이런 차별 상담이 잘 해결될 때 보람을 느껴요

 

조직이 커지면서 어떤 변화를 느끼셨나요?

초창기에는 같이 밥을 해 먹고 가족 같았는데, 지금은 직급도 생기고 인원도 많아져서 기업 같은 분위기도 조금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누구랑도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근활동가 수가 많아져서 과거와 같은 밀접함은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지만, 수평적인 조직 분위기가 문화로 남아 있어요.

 

사람센터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투쟁을 계속 이어가고 의제를 계속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에요. 다른 기관보다 최신 제도와 정보를 빨리 알 수 있고, 장애인 당사자에게 끊임없이 이 정보와 제도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에요.

 

김시형 팀장에게 사람센터는 어떤 존재인가요?

제 삶에서 사람센터는 뼈를 묻는 조직 같은 거에요. 20대, 30대를 다 여기서 장애운동 하면서 보냈고,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에요.

 

20주년을 맞은 사람센터에 바람을 말씀해주신다면요?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잖아요. 앞으로 더욱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일도 많고 힘들지만, 결국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죠. 10년 전에도 “벌써 10년”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벌써 20년”이 됐네요. 앞으로도 더욱 번창하고, 사람을 더 생각하는 자립생활센터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