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서른다섯에 멈춘 삶, 30년 만에 다시 시작
서금순(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원, 대구시립희망원 탈시설)
언제 어디서 태어나셨나요?
저는 1955년 달성군에서 태어났어요. 달성군에서 쭉 살다가 35살 때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목뼈를 다쳤어요. 목뼈를 다치면서 장애를 지니게 되었고, 희망원에 들어가게 됐어요. 형제들이 몇 분 있었는데, 막 돌아가시고 지금은 서이(셋) 남아 있는데, 내가 목뼈를 다치고 시설에 들어가면서 가족 관계는 단절됐지요.
대구시립희망원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어요?
병원에서 좀 생활하다가 집에서 있다가 병원 측에서 주선을 해줘서 들어가게 된 걸로 알고 있어요. 희망원에 처음 들어갈 때가 1988년이니까, 들어가서 30년 넘게 살았어요. 2020년에 (희망원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시민마을에서) 나왔으니까 제일 마지막에 나온 사람이에요.
희망원에 들어갈 때는 어떤 기분이셨나요?
험난하고 형편없었어요. 처음엔 서러움에 북받쳐서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하는 분노가 많았죠. 한 방에 열 명이 같이 있었고, 매트리스 하나에 둘이 자기도 했어요. 식사는 형편없었고, 국에는 자갈이 씹히고. 음식물 쓰레기보다 못한 걸 먹었지요. 늘 불안했어요. 언제 폭력이 일어날지 몰라서요. 바깥에 나가본 건 10년 넘어서 처음이었어요. 머리도 빡빡 깎이고 옷도 같아서 밖에 나가면 손가락질 받을 것 같았어요.
사람센터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2018년쯤 TV에서 희망원 폐쇄 뉴스를 보게 됐어요. 너무 두렵고 ‘어디로 가야 하나’ 싶었는데, 자립한 동료들이 ‘나오니까 괜찮더라’ 하면서 권유했어요. 처음엔 안 나간다고 버텼어요.
왜 그렇게 시설 밖으로 나가기 싫으셨나요?
무조건 안 나간다고 했지요. “나는 전혀 움직일 수도 없고, 손발도 못 쓰는데 밖에 나가면 누가 나 같은 사람 받아주겠노” 싶어서요. 아무리 활동지원사가 있다고 해도, 내 몸은 혼자 케어 못 한다 생각했기 때문에 나갈 엄두가 안 났어요. 그래서 사람센터 활동가들이 희망원 앞에 와서 폐쇄 촉구 기자회견 할 때도 나가서 싸웠어요. ‘나는 안 나가니까, 폐쇄 이야기 하지마라’고 노금호 소장과 박명애 대표(장애인지역공동체)에게 욕도 했어요(웃음).
나오게 된 계기는 있었나요?
먼저 나간 동료들이 나가자고 해도 그때는 “나는 못 간다, 나는 여기서 살겠다” 하고 버텼어요. 희망원은 싫었지만 그래도 내 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더 무서웠던 거예요. 다른 동료들이 먼저 나가서 웃고, 밝아진 모습으로 돌아온 걸 보고 결심했어요. “나도 한 번 단기 체험이라도 해보자” 싶었지요. 그렇게 사람센터에서 받아준다고 해서 나가게 된 거예요
단기 체험은 어떠셨나요?
30년 만에 자유를 찾은 거였어요. 서문시장 야시장도 가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죠. 누구 허락도 필요 없고, 너무 좋았어요 그러고는 2020년에 완전히 탈시설 하게 됐어요. 처음엔 체험홈에 갔다가, 황실아파트로 옮겼다가 2024년에 지금 집으로 나왔어요. 내 집 계약을 하고 나온 건 작년 4월이에요.
자립해서 살면서 가장 좋은 건 무엇인가요?
좋은 건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요. 누구 간섭도 안 받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 은행 가는 거, 주민센터 가는 거, 이런 걸 평생 처음 해봤어요. 시설에서는 늘 불안했어요. 언제 폭력이 일어날지 몰랐죠. 지금은 대화도 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요.
탈시설 후에는 사람센터에서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셨나요?
명절마다 송편, 만두 만들기 같이 하고, 칠순 잔치도 해줬어요. 시설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죠. 다 같이 가족처럼 챙겨주니까 너무 좋았어요. 동료 상담도 했어요. 저는 젊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제 경험은 나눠줘야죠. ‘시설에 있을 땐 힘들었는데 나오니까 너무 좋다, 여러분도 나와야 한다’ 이렇게 말해줍니다.
자립 후에는 권익옹호를 위한 집회에도 나가신다고요?
예, 이제는 자신 있게 나갑니다. 시설 안에서 겪은 걸 알기 때문에, 동료들을 위해 싸우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이 나와서 살 수 있도록 힘이 된다면 뭐든 할 수 있어요. 아까 말한 것처럼 처음엔 소장님이랑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도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더 잘해주셨어요. 저라면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은혜는 정말 못 갚죠.
사람센터가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아직도 시설에 갇혀 있는 동료들이 많아요. 하루빨리 구출해낼 수 있도록 예산도 늘리고 제도도 만들어야 해요. 또, 자립한 사람들이 나중에 장례 같은 것도 걱정 없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해요. 활동지원 재심사도 폐지해줬으면 좋겠어요. 늘 (활동지원)시간 깎일까 불안하거든요. 나이가 들어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래요. 제가 나와 보니까 너무 좋고, 혼자만 잘 사는 것 같아 늘 미안하거든요. 부디 다른 시설 동료들도 하루빨리 나와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시고, 예산도 늘려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