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시설에서 나와 탈시설을 이끄는 동료상담가로”
이은경(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활동가, 탈시설 당사자)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1980년도에 김천에서 태어났고, 그렇게 알고 있고요. 가족은 엄마와 오빠 한 명이 있다고 들었어요. 제일 어린 시절 기억은 오빠랑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었던 거예요. 아마 8살쯤이었을 거예요. 그 무렵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서울에 있는 삼육재활원이라는 특수학교에 들어갔어요. 엄마가 최고 좋은 학교라고 해서 보내주셨는데 5학년까지 다니다가 그만두었어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포도밭까지 팔았는데도 학비 감당이 안 됐거든요.
이후엔 어디로 가시게 됐나요?
집으로 온 게 아니라 경산에 있는 시설로 가게 됐어요. 부모님이 직접 보낸 거였어요. 들어갈 때 돈을 두둑히 들고 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14살 이후부터 부모님과 연락이 완전히 끊겼어요. 편지도 되돌아오고, 전화도 받았다가 끊겨버리면서 ‘나는 혼자구나, 연고자가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시설에서 생활은 어떠셨나요?
너무 힘들었죠. 서울에 있을 때는 비슷한 또래 친구들과 지냈는데, 경산 시설에 오니 발달장애인 분들이 많아서 말이 잘 안 통했어요. 사춘기 시절에 부모님도 안 오시니까 더 힘들었어요. “내가 80대, 90대가 돼도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죠.
힘든 상황을 어떻게 버티셨나요?
다행히도 자원봉사자 언니, 오빠가 와서 상담해 줬어요. 공부를 해보자고 권해서 20대 초반부터 검정고시를 준비했어요. 초·중·고 검정고시를 3년 만에 다 패스했어요. 과목별로 자원봉사자가 붙어서 개인 과외처럼 도와줬고, 저는 다른 사람들 다 잘 때 혼자 스탠드 켜고 공부했습니다. 완전히 혼자만의 싸움이었죠.
대학 진학도 생각하셨나요?
네, 했죠. 그런데 너무 부담이 컸어요. 초·중·고는 그냥 죽기 살기로 했는데, 대학은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성적도 잘 나와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커서 결국 대학은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직업전문학교에 갔어요. 처음엔 대구에 있는 곳을 갔는데, 중증장애인은 지원이 안 돼서 전라도 담양에 있는 덕산직업전문학교, 지금은 혜림직업전문학교로 이름이 바뀐 곳에 갔어요. 거기서 2년 동안 정보처리학과에서 공부했는데,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였어요. 시설처럼 허락받고 외출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거든요. 진짜 신세계를 경험했죠.
졸업 후에는 어떻게 하셨나요?
직업학교 끝나고 다시 시설에 들어갔는데, 도저히 못 있겠더라고요. 똑같은 생활 반복이 너무 숨 막혀서 컴퓨터로 ‘자립생활센터’를 검색했어요. 당시 나온 곳이 2곳이었는데, 그 중에 한 곳이 사람센터였어요. 연락을 했고, 사람센터 관계자분들이 직접 와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시설에서는 “나가면 굶어 죽는다”는 말도 들었지만, 저는 무조건 나가야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한 달 만에 나왔습니다.
그때 체험홈을 경험하신건가요?
네, 스물여덟 살 때 사람센터 체험홈에 들어갔어요. 1년 6개월 정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낯선 환경과 대인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2주 동안 매일 울기도 했어요. 또 생계비가 들어오면 일주일 만에 다 써버려서 생활이 막막했죠. 그래도 조금씩 배우면서 적응했어요.
사람센터에서 어떤 프로그램들을 접하셨나요?
여성 모임, 성교육, 동료 상담 교육 등 많이 참여했습니다. 시설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여기서 처음 배웠어요. 충격도 있었지만 큰 도움이 됐어요. 동료 상담도 배우면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권익옹호 활동, 투쟁 현장도 경험하셨죠?
네. 시설에 있을 때는 TV로만 보던 장면이었는데, 직접 나와서 피켓 들고 싸우는 걸 하게 됐죠. 추운데 바닥에서 자고, 경찰과 부딪히고, 서울역 투쟁도 갔어요. 힘들었지만 그때 정말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싸울 때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자립까지 어떻게 이어졌나요?
체험홈을 나온 뒤 대명동 교대 근처에 작은 투룸을 마련했어요. 보증금은 다른 단체에서 빌려서 갚았고요. 드디어 혼자만의 집을 가지게 됐을 때 “정말 독립했구나, 나만의 공간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사람센터가 성장하는 걸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좋기도 하지만 걱정도 돼요. 예전에는 좁은 공간에서 사람이 오면 반갑고 가족 같은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사업적으로 커지면서 사람이 와도 인사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웃음). 자립한 사람들이 더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지금 동료 상담가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네, 내담자가 두 명 있는데 한 분은 시설, 한 분은 요양병원에 있어요. 제도 문제 때문에 자립하기가 어려워요. 활동지원 시간이 줄까 봐 두려워서 못 나오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제도는 꼭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센터가 은경 님께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자립할 수 있게 해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활동지원 시간을 보장해주고, 제도를 만들고, 나올 수 있게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역할을 했어요. 인간으로서 당연한 삶을 살게 해준 거죠.
20주년을 맞은 사람센터에 바람을 전해주신다면요?
앞으로도 목소리를 더 많이 내야 합니다. 새로운 활동가도 많이 키워야 하고요. 커가는 건 좋지만, 사람을 챙겨주는 마음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자립인들도 계속 함께할 수 있도록 더 따뜻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람센터 20주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