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 뒤집어 주는 곳”
임재원(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 활동가, 탈시설 당사자)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1990년 대구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따로 지내셨는데, 그래도 두 분과 다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머니와 재혼으로 낳은 동생까지도 자주 교류하며 지내고 있어요.
시설에 가게 된 건 언제였나요?
아홉 살 때였어요. 할머니랑 아버지랑 살고 있었는데, 차 타고 어디 놀러 가는 줄 알았어요. 근데 낯선 곳에 내려졌고, 할머니가 저를 두고 간다고 하셔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갑자기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시설에서 쭉 살다가 스물 두 살에 퇴소했어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바로 옆 특수학교를 다녔어요.
처음에는 평생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다고요?
네. 다들 그렇게 지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보다 먼저 퇴소하는 형을 보고 ‘아, 나갈 수도 있구나’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억울하다는 생각, 자립에 대한 생각을 청소년기부터 조금씩 했던 것 같아요. 대구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하면서 시설에서 나왔어요. 사실 성적은 별로 안 좋았는데,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후보 6번까지 밀려 있다가 2월쯤 연락이 와서 급하게 자립을 준비하고 나왔어요.
자립 초기 생활은 어땠나요?
엄청 힘들었어요. 시설에서 13년을 살다 보니 대인관계도 서툴렀고, 자립홈 같은 준비 단계도 거치지 않고 바로 나왔으니까요. 활동지원도 부족했고 혼자 하는 게 많았습니다. 모르는 사람 붙잡고 화장실 같이 가달라고 할 때도 있었고, 방 안에서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며 도움받을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대학은 사람이 많아서, 도움을 요청하며 적응해 나갔습니다
사람센터는 어떻게 알게 됐나요?
시설에 있을 때부터 사람센터에서 찾아왔어요. 김해정 팀장님, 이연희 국장님이 오셔서 상담을 해주셨고, 2주간 단기 체험을 했어요. 그때 버스 타는 거, 지하철 타는 거 다 배우고 활동지원도 처음 사람센터를 통해 받았어요.
대학 시절에도 장애인 운동을 하셨죠?
네. 대구대 안에서 ‘레츠’라는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김시형, 김선득 팀장님이 제 직속 선배라 직접 학교까지 와서 권유하셨어요. 그때 장애등급제 폐지 집회, 기초수급자 부양의무제 폐지 세미나 같은 활동에 참여했어요. “아, 장애 운동이라는 게 있구나” 처음 알게 됐죠. 졸업을 앞두고 처음엔 심리학 복수전공을 살려 상담사를 해볼까 했어요. 그러다가 교회 활동을 하면서 신학대학원에 가기로 했어요. 총신대 신대원에 진학해서 졸업했습니다
목회자가 되려고 준비하셨던 거죠?
네, 졸업 후에 원서를 50번 넘게 냈는데 다 떨어졌습니다. 장애인 목회자를 뽑으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컸어요. 결국 목회는 못 하고, 서울·경기권에서 2년 정도 지내다가 다시 대구로 내려왔어요.
다시 사람센터와 연결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탈시설 당사자 대회 포스터를 보고 발언 신청을 한 게 계기였습니다. 그때부터 다시 활동을 시작했죠. 유튜브를 혼자 운영하고 있었는데, 전근배 국장님이 “영상 편집을 해 달라”고 해서 사람센터 행사 영상 편집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유튜브 편집뿐 아니라 집회는 거의 다 참여해요. 또 직장 내 장애 인식 강사 자격을 살려 교육도 나가고, 지금은 동료상담도 하고 있어요.
교회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혼란은 없으셨나요?
처음엔 있었죠. 특히, 성소수자 문제에서 갈등이 있었는데, 결국 인권을 이야기하는 게 신앙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수가 외친다고 정의가 되는 건 아니고, 소수자의 목소리에도 정의가 있다는 걸 배우게 됐어요.
동료상담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긴밀하게 들어갈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성과보다 존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요. 물론 ‘더 큰 일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이 일에서 오는 감동이 분명히 있어요
SMA(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스핀라자’ 투약을 중단하셨다고요?
맞습니다. 효과도 크지 않았고,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점수 때문에 불안했고, 맞는 과정 자체가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은 “몸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배제되는 장애인도 많다”는 걸 깨닫고, 치료 자체를 죄책감 없이 바라보고 있어요.
사람센터는 재원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장애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우쳐 준 곳이죠.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곳, 존엄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에요. 그리고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 뒤집어주는 곳입니다. 시설에 가두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게 더 낫다고 여기는 사회에 “그건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센터 20주년을 맞아 바람을 전한다면요?
제가 처음 만났을 때는 청소년기였는데,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까지 사람 중심의 가치를 지켜온 많은 분들의 노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에너지 있고 활발하게, 청년처럼 굳건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