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활동보조 제도화하라!"


2006년 대구지역의 중증장애인들이 반월당 도심 거리를 점거하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들은 "장애인을 시설에, 집 구석에 쳐박아 둔 대구시를 규탄한다"며 장애인 활동보조 제도(현. 활동지원서비스)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사람센터는 '중증장애인 생존권 확보 연대'의 공동대표단체로 활동하며 투쟁을 주도했다. 2006년 서울시에 이어 대구시에 장애인 활동보조제도 시범사업이 실시되었고, 2011년 정부는 장애인활동지원법을 제정하여 전국적으로 실시했다. 이 투쟁은 한국사회와 대구지역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시작이 되었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


2007년부터 사람센터의 동료들은 지역의 장애인단체, 인권단체들과 대구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조례를 제정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2000년대 초 서울 오이도역의 리프트 추락 참사를 시작으로 전국의 장애인들이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것,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를 도입할 것, 교통약자를 위한 특별교통수단을 만들 것 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매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닌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임을 알리는 투쟁과 결합되어 장애인 이동권 확보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대구시에 조례가 제정되었고, 나드리콜(특별교통수단), 저상버스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권리를 생각하세요!"


2006년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 이후 일상적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말하며 사회를 바꾸어가기 위해 사람센터는 지역 단체들과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결성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대구지역 조직인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매년 대구시와 각 구군에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요구안을 개발하고, 동료들과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의 형태는 기자회견, 대시민 선전전, 대시민 문화제 등 각종 방법으로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장애인의 권리운동을 통해 그간 억압받아 온 장애인 동료들은 자신의 권리를 알아갔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센터가 이사를 했어요"


2009년 10월 말, 사람센터가 이사를 했다. 소박했던 공간에서 조금 더 넓은 공간으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동료가 여러 명이 오더라도 덜 불편한 공간으로, 화장실이 딸린 공간으로 말이다. 동료들과 지역사회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축하하고 응원했다. 활동가들은 감사의 노래, 떡과 음식을 준비했다. 이전 개소식 날 잔치는 밤새 이어졌다.

"무장애캠프, 자립생활캠프"


2010년 여름, 동료들과 '무장애환경만들기 중증장애인 여름캠프'를 떠났다. 우리가 탈 수 있는 버스가 없어 비장애인 활동가들과 활동지원사들이 함께 버스 이동을 도왔다. 잠시 휠체어는 트럭에 맡겼다.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춤을 췄다. 불편한 시설 환경에서도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사람센터, 세계에 서다"


2011년은 한국의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이 세계로 나아가는 시간이었다. 2000년대의 장애인 이동권 운동, 활동보조 제도화 운동, 장애인교육법 제정 운동,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 등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세계 속에서 한국의 장애인운동이 주목받았다. 사람센터는 2011년과 2012년 아시아태평양장애포럼(Asia-Pacific Disability Forum) 한국조직위원회 활동에 함께하며 한국과 대구의 장애인의 권리 문제에 대해 알렸다.

"배워서 남 주자, 많이 많이 주자"


사람센터의 동료들은 계속 공부를 했다. 동료상담, 인권교육, 장애인의 차별과 권리, 상담의 기술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교육이 사람센터에서 일어났다. 우리의 목표는 '열심히 배워서 성공하자'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배워서 남 주자'는 것이었다. 인권교육으로, 동료상담으로, 차별상담으로 동료들과 시민들,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갈고 닦았다. 대구장애인차별상담전화 '평지', 대구장애인권교육네트워크, 대구지역 동료상담가네트워크 등이 이제 만들어져 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를 쓰고, 볼링을 하고, 보치아를 하고"


사람센터에는 많은 자조모임이 있(었)다. 장애여성모임 날라리, 볼링모임, 보치아모임, 글벗모임, 노래모임, 스토리텔링 모임, 사진모임, 연극모임 몸뚱아리, 아람회원(정회원)모임, 인권교육콘텐츠 제작모임, 반려견 모임, 맛집탐방 모임, 삐장(삐딱한 장애인모임), 탈시설장애인 IL클럽... 셀 수 없이 많은 모임들이 생겨나고 사라졌고 또 생겨났다. 사람센터의 역사는 동료들이 모여왔던 역사이기도 하다.

"자립생활주택, 지역사회에 주거지를 만들다"


사람센터는 개소 이후 투쟁과 함께 2007년 '자립생활체험홈'을 열었다. 시설과 가족의 '보호' 아래에서 살아온 동료들이 억압의 경험을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자립생활체험홈은 점점 확대되었고, 이제는 '자립생활주택'으로 이름을 바꾸어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2021년부터 장애인 자립지원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2025년 장애인 자립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사회의 탈시설 자립생활 인프라 형성의 역사에는 사람센터가 있다.

"발달장애인, 세상의 중심에 서다"


2010년대에 들어 한국의 장애인 권리운동은 발달장애인의 권리 강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장애인 정책 내에서도 발달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사람센터는 발달장애인 자조운동 단체인 한국피플퍼스트의 조직화를 지원하고, 발달장애인의 자립지원, 직무지도원 제도, 노동권, 낮활동(주간활동) 등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지원서비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권리로서"


사람센터와 대구지역의 동료들이 주장한 활동보조서비스 제도는 이제 한국의 가장 중요한 장애인 제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장애등급제의 형식적인 폐지 이후 도입된 장애인지원서비스 종합조사의 문제로 활동지원서비스는 여전히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권리로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이용자, 활동지원사, 서비스 코디네이터들이 활동지원서비스 권리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의 노동을 새롭게 모색하다"


모든 장애인이 원한다면 자신이 가능한 직무를 찾아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센터는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일자리 지원, 동료상담사업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중증장애인 동료들이 기존의 일에 자신을 끼워맞추는 형태가 아니라 자신에게 적합한 일을 찾을 수 있도록 활동해왔다. 도서관, 재활용센터, 호텔 등 지역사회의 곳곳에서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동료상담, 접근성 조사, 문화예술 활동, 온라인 모니터링 등을 통해 다양한 직무를 찾아가고 있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로, 탈시설 자립생활은 권리다"


2016년 일어난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 사건'은 2014년부터 시작된 대구시의 탈시설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이 더욱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금이나마 마련되어 있었던 자립생활주택, 활동지원서비스 추가지원(최대 24시간) 등을 통해 시설 폐쇄 이후에도 다른 시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겨날 수 있었다. 희망원의 사람들은 스스로 자립생활의 '희망'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탈시설의 권리를 넓혀주고 있다. 이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의 경험이 모여 '시설 수용 생존자'인 탈시설 장애인들과 사람센터는 2022년 제1회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 대회를 개최하고 대구탈시설장애인연대를 건설했다.

"사회에 대한 지치지 않는 문제제기"


자립생활은 '알아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원을 통해 권리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시설과 가족의 보호를 벗어나더라도 우리는 차별과 배제의 '시설사회'를 마주한다. 사람센터의 동료들은 일상에 영향을 주는 구체적인 공간들, 제도들, 문화들을 바꾸기 위해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수용시설의 문제까지, 장애인의 배회와 실종에서부터 건강권의 문제까지. 

"소외받고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과 손 잡고"


우리들은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으로만 살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애'는 우리 각자가 가진 삶을 살아가는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먼저 사람이고, 우리는 먼저 시민이다. 그래서 사람센터의 동료들은 홈리스, 빈민, 성소수자, 불안정 노동자, 이주민 등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곁에 있고자 했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가 흔들릴 때에, 사회적 참사로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애도할 때에 사람센터의 동료들도 그 곳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저항해 왔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