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센터의 회원 자조모임 중 글을 읽고, 쓰는 글벗모임이 있습니다. 글벗모임의 임은현님께서 안도현 시인께 직접 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하였고, 시인께서는 직접 들러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기회를 주었습니다. 은현님의 용기(?)와 안도현 시인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본 소식지 내용은 안도현 시인께서 나눠주신 이야기를 일부 요약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주에 살고 있습니다. 우석대라는 곳에 일을 하고 있는데, 은현씨가 (제게 보낸 메일에서) 그 곳 학생들보다 글을 잘 썼어요.(웃음) 제 고향은 경북 예천입니다. 어머니는 지금 안동에 계시구요. 저는 학교를 대구에서 다녔어요. 고등학교 때 까지. (……) 오늘은 1시간 정도 이야기할 건데요. 우선 강의라고 생각하지 말고, 저하고 같이 시를 읽는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진1. 안도현 시인의 이야기 모습
나는 왜 시인이 되었나?
평소 시 많이 읽으세요? 시를 읽기 전에 내가 왜 시인이 되었는가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공부를 잘 했는데(웃음), 제일 하기 싫은 게 글 쓰는 것이었어요. 아주 싫어했어요. 나는 50년 넘게 살면서 마음먹고 일기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어릴 때 좋아했던 것은 그림 그리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미술반을 했었고, 선생님들도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중학교 가서도 그림 그리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러다 제가 중학교 교지를 만들던 때에, 교지 속 삽화 그리는 일을 맡았었던 적이 있어요. 미술반원 이었거든요. 근데 교지는 편집부가 ‘갑’이 되고 미술부는 ‘을’이 되는 거예요. 중3 이었는데 하루는 교지 만드는 것을 지도하던 국어선생님이 불러서 교무실 앞 복도로 갔어요. 근데 화난 얼굴로 귀뺨을 두 대 때리는 거예요. 멍하게 맞고 있으니까, 하시는 말씀이 ‘미술반원이 그림 그리는 속도가 늦어서 책이 제 때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열심히 하고 있는데…….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웃음) 근데 싸워선 복수가 안 되잖아요. 선생님한테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복수하는 방법을 하나 생각했어요. ‘쓰기 싫은 것이지만 시를 한 편 쓰자’, 시를 멋지게 써서 교지에 실리게 되면 ‘미술반 중에도 이렇게 시를 잘 쓰는 애가 있었구나’(……) 선생님을 반성하게 만드는 시.(웃음)
근데 시가 짧긴 하지만 쓰기가 쉽지 않잖아요. 일주일 걸렸어요. 시 1편 쓰는데. 고치고 또 고치고. 아침에 읽어보면 또 실망하고. 그렇게 시를 다 쓰고 나서 읽어보니까 제가 쓴 것이지만 잘 쓴 거예요.(웃음) 자신 있게 교지에 투고하고, 졸업 때가 되어서 책이 나왔습니다. 제 시를 찾아봤죠. 근데 내 시가 없는 거예요. 복수형으로 심혈을 기울인 내 시가 없는 거였어요. 뺨 맞아서 열 받고, 시가 실리지 않아서 또 열받은 거죠.(웃음)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문예반에 들어가서 시를 배워야 겠다, 그래야 귀뺨 맞은 게 화가 풀리겠다.’, 입학하자마자 문예반에 들었죠. 근데 고등학교에는 교지가 없는 거예요.(웃음) 어쨌든 문예반에 들어가서 선배들하고 독서토론도 하고, 시화전도 하고, 문학의 밤도 하고, 자그마한 책자도 내고 그랬어요. 그 때부터 백일장 같은 곳에 나가니 상을 조금씩 받기도 하더라구요. 제가 고등학교 때 좀 잘나갔어요.(웃음) 그 때부터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지기 시작했죠.
보통 시나 소설 쓰는 사람들이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방금 제 경우 보셨죠? 글쓰기 정말 싫어했고, 재능이 아니라 원수를 갚기 위해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걸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
너와 나
안도현
밤하늘에 별이 있다면
방바닥에 걸레가 있다
문제 하나 낼게요. ‘여기에서 제일 아름다운 단어 하나만 찾아보세요’라고 하면 보통 뭘 찾겠어요? ‘별’ 반짝반짝 빛나면 예쁘잖아요. 그런데 별이 예쁘단 것은 다 알아요.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알고, 할머니도 알고, 초등학생도 알아요. ‘아, 예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저는 남들이 다 예쁘다고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걸레’는 어때요?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방바닥에 걸레가 만약 없으면? 처음부터 걸레가 더럽고, 냄세나는 게 아니죠. 우리가 더럽혀 놓은 것을 닦으려고 하다보니까 더러워진 거예요. 밤하늘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별’이라면, 우리가 있는 방바닥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에 ‘걸레’도 한 몫을 한다는 거예요. 자기역할이 걸레에게도 있는 것이죠. 나는 걸레에게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별만 찾는 게 아니라, 걸레한테 들어있는 아름다움도 찾아내는 것, 저는 이게 시라고 생각해요.
진짜 아름다운 것과 약간 아름다운 것
다른 시 한 편 읽어볼게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쓴 시에요.
내 자지
이재흠
오줌이 누고 싶어서
변소에 갔더니
해바라기가
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
나는 안 비에 줬다.
지금은 초등학교에 이런 변소가 없죠. 옛날에는 변소가 학교 뒤에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해바라기가 쑥 올라와 있는 거예요. 그 말은 뭐에요? 가을이 되었다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이 어린이가 쓴 동시에는 이런 제목을 달지 않아도 돼요. ‘오줌을 누다가’ 이렇게 달아도 되고, ‘변소에 가서’ 이렇게 달아도 되고, ‘해바라기’ 이렇게 달아도 되고, ‘가을’ 이렇게 달아도 되요. 제가 몇 년 전에 중학교에 강연을 가기 위해서 선생님께 메일로 이 시를 보냈어요. 근데 빔 프로젝터를 쓸 때 보니까 제목이 바뀌어 있었어요. ‘내 고추’ 이렇게.(웃음) 그래서 좀 화가 났습니다. ‘제목이 내 자지인데, 왜 내 고추로 바꾸었습니까’, 남녀공학이라서 여자 애들이 민망할까봐 바꿨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 쓴 아이에게 물어봤냐고 한 적이 있어요. 이게 초등학교 3학년이 쓴 시인데, 만약 얘가 ‘내 자지’라고 쓰면 창피하니까 ‘내 고추’라고 써야지 했으면, 이 시가 그만큼 재미있을까요? 이 애가 갖고 있는 순수성을 스스로 깎아 먹게 되는 거예요. 어른은 이렇게 쓸 수 없어요. 이렇게 써야 초등학생 같은 거예요.
제가 옛날 퇴직교사 시절이 있었어요. 어느 분이 과외를 소개시켜줬어요. 초등학교 1학년 글쓰기 과외. 제가 중고등학생만 가르쳐봐서 초등학생이랑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같이 놀아야겠다’ 하면서 시작했죠. 평소 엄마가 쓰는 말 5개만 써보자고 했어요. 걔들 공책을 보지 않아도 뭐가 나올지 알겠죠?(웃음) ‘손 씻고 밥 먹어라’, ‘학원 빠지지 말아라’, ‘숙제는 했니’……. 뻔하잖아요. 근데 한 아이가 이렇게 썼어요. 엄마가 많이 하는 말, ‘꼴배기 시러’(웃음)
‘티비 좀 그만 봐라’하고는 차원이 다른 거죠. 경상도는 모르겠는데, 전라도에서는 이 말을 많이 써요. 맞춤법 다 틀렸죠. 원래는 ‘꼴 보기 싫어’ 이렇게 써야 하는데. 띄어쓰기도 안하고요. 근데 제가 보기에는 제일 잘 써서 칭찬했어요, 엄마한테도 보여주고. 엄마가 얼굴이 빨개진 거예요. 맞춤법이 다 틀리고 뭐냐고. 그래서 제가 제일 잘 쓴거다 이게, 그랬어요. ‘그만큼 관찰을 잘 한 것이다, 나중에 두고 봐라 공부도 잘할 것’이라고 했어요. 이게 진짜 아름다운 것과 약간 아름다운 것의 차이입니다.
사진2. 안도현 시인의 이야기 모습
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도대체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뭔가’, ‘더 시적인 것이 뭔가’ 생각하며 시를 써왔는데요, 제가 쓴 시 중에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있어요.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시를 쓰고 나서 언제부턴가 제 이름을 검색하면, ‘연탄시인’ 이렇게 나오더라구요.(웃음) (……) 백일장에서 ‘가을’이란 주제를 내줬었어요. 써야 하는 사람들은 가장 대표적인 가을 풍경이 뭘까 생각할 거예요. 가을을 상징하는 것 중에 제일 쓰고 싶은 것은 뭘까요? ‘나는 이것 써야지’하고 소재를 생각해보세요. 무슨 생각했는지 알아맞혀 볼게요.
낙엽, 단풍잎, 은행잎……. 이런 것 쓸 때는 ‘빨간 단풍잎’이라고 쓰지 않아요. ‘빠알간-’ 이렇게 써요.(웃음) 그래야만 시가 되는 줄 알아요. 가을하늘도 ‘파아란 가을하늘’이라고 쓰고, 코스모스를 떠올린 사람들은 전부 다 ‘한들한들’이라고 써요. 귀뚜라미란 제목으로 쓰라고 하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귀뚤귀뚤’, 또 가을들판이라고 하지 않고 ‘황금들녘’이라고 하죠. (……) 별이 아름답다는 것을 모두 아는 것처럼 뻔하니 재미가 없어요. 뻔한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에요.
(……) 지금은 연탄을 때는 집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교직에 있을 때는 거의 100% 연탄이었어요. 뜨거운 여름에 보이지 않던 연탄트럭이 가을이 되면 보이기 시작하죠. 가을에 ‘낙엽’, ‘코스모스’가 아니라 ‘연탄’을 갖고 시를 쓸 수도 있는 것이에요. 근데 ‘연탄’, ‘걸레’, ‘하수구’, ‘똥’, ‘가래침’ 이런 것들은 다 시가 안 된다고 우린 생각해요. 별만 아름답다고 하는 거죠. 우린 걸레의 중요성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해요.
연탄은 밥도 끓여주고, 국도 끓여주고. 왜 예전엔 연탄불에 머리도 말리잖아요. 지금이야 수도꼭지 틀면 온수가 나오지만 옛날에는 찜통에다가 데워서 세수하고 하고 했죠. 연탄재는 참 귀찮은 존재였어요. 며칠 수거해가지 않으면, 술꾼들이 발로 차버리고 말이죠.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언덕이 있는 동네에 살았었어요. 근데 어떤 분이 나와서 연탄재를 다 으깨서 빙판길을 덮더라구요. ‘처음부터 끝까지 연탄은 헌신하는 존재이구나.’ 제가 ‘연탄’으로 쓰지 않고, ‘촛불 입으로 함부로 끄지 마라’고 했으면 사람들이 저에게 ‘촛불시인’이라고 불러줬을까요?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서 어둠을 밝힌다는 것은 다 아는 거에요. 별이 아름답다는 것처럼.
최근에 가끔 이 시 이야기를 하는데요.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끄고 잘 시간이야
그 동안 좋아하던 간장게장을 못 먹게 되었다고 하는데(웃음), 저는 여전히 잘 먹습니다.
어떤 것인지 알겠죠? 보통 게장은 꽃게 살아 있는 걸로 담가요. 왠지 그 간장게장 안에 있는 노란 알이 더 맛있죠. 고소하고요. 우리는 인간으로 그게 맛있어서 먹는거지만, 꽃게이 입장이라면 살아 있는 상태, 알을 밴 상태에서 게장이 되어버리는 거잖아요. 그럼 그 꽃게는 굉장히 슬펐을 것 같아요. 알을 배었는데 낳아보지도 못하고. 얼마 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많은 생명들이 바다에서 죽어갔잖아요, 그 생각도 나고.
근데 엄마 꽃게는 알들보다 세상에 대한 감각이 발달되어 있죠. 간장에 절여져 죽는 걸 알고 있다면, 엄마가 알들에게 ‘야, 인제 우리 다 뒤졌어, 끝장이야, 너 네 책임 질 수 없어’ 그렇게 말할까요? 아니죠. 비록 그 운명이 죽어가는 순간이지만, ‘얘들아 늘 저녁에 어둠이 오는 것처럼, 불 끄고 자야해’ 하고 안심시키지 않았을까요.
오늘 그럼 마무리 하겠습니다. 얼굴들을 보니까 듣는 태도가 아주 좋았어요. 살다보면 또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오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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