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탈시설을 꿈꾸는 중증장애인의 비빌언덕”
이연희(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사람센터에서 일하기 전에는 어떤 삶을 보내셨나요?

1985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어요. 3남매의 큰 딸로 어린 시절은 평범하게 보냈어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 초등 특수교육 전공을 했는데요. 사실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철학과를 가볼까 고민도 했는데, 부모님 기대도 있고 그냥 즉흥적으로 특수교육과를 선택했어요. ‘이름이 특이하다’는 이유도 있었죠. 막상 들어가 보니 사범대학이고 특수교육과니까, 자연스럽게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대학 시절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특수교육과라서 한 달에 한 번씩 장애 아동들과 야외 활동하는 봉사 동아리가 있었고, 저도 참여했죠. 가톨릭 신자라서 경산 지역에 있는 작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주 1~2회 봉사했고, 주말에는 김천에 내려가 주일학교 교사도 했어요. 그래서 큰 연합 동아리는 못 했지만, 전특연(전국특수교육과학생회연합) 활동을 통해 에바다(에바다 시설비리 및 인권침해) 투쟁 현장을 직접 본 게 컸어요. 농성장, 집회 현장에 가서 “아 이런 곳도 있구나”라는 걸 느꼈고, 특수교사들이 자기 집을 임시 거처로 내주는 것도 보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그 경험이 교사 진로와도 연결됐나요?

임용 준비를 하면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과연 교사로서 자질이 있는가, 부모님과 학생들을 단단하게 만날 수 있는가 자신이 없었죠. 그 무렵 2006년에 대구에서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이 있었고, 저도 선배들이랑 같이 참여했습니다. 서울에선 한강대교를 기는 투쟁에도 참여했는데, 밤까지 기어가고 결국 제도가 만들어지는 걸 직접 봤어요. 그게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됐어요.

 

결국 교사가 아닌 길을 선택하신 거군요.

맞아요. 4학년 때 교생 실습도 미루고, 활동보조 투쟁과 센터 활동을 병행했어요. 정식 상근은 아니었지만 사람센터에 자주 나갔고, 2006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지역 단체의 사무실 한켠을 빌려서 책상 몇 개 두고 간이로 시작했죠. 봉조 선배는 책장을 뒤집어 침대 삼고, 스티로폼 깔고 누워서 컴퓨터를 하실 정도였어요

 

그 시절 사람센터 활동은 어땠나요?

회원들을 만나러 가면 하루가 다 갔어요. 예를 들어 월성주공 아파트까지 가려면 휠체어 타고, 지하철 리프트 오르고, 또 30분씩 걸어가야 했습니다. 현관 턱 앞에서 상담하고, 집 청소도 도와드리고, 쓰레기도 버려드렸죠. 상담은 30분인데 왕복은 4시간 걸렸어요. 사무실에서는 버너로 밥해 먹으며 활동했어요. 다 같이 고생하면서도 “우리가 길을 열고 있다”는 생각에 버틸 수 있었어요.

 

당시 활동비는 얼마나 받으셨나요?

처음엔 월 30만 원 정도였어요. 최저임금도 안 됐죠. 그래서 활동보조 아르바이트도 하고, 부모님 지원도 받았어요. 부모님은 제가 임용 준비하는 줄 아셨죠. 사실 돈이 적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다 같이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보조금을 지원받게 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처음엔 후원금, 회비로 버텼는데 2008년에 자립생활 지원사업 보조금 1억을 받으면서 큰 변화가 왔어요. “듣보잡 단체가 엉망으로 하면 안 된다”는 부담이 컸어요. 그래서 노들센터(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같은 단체 도움을 받아 문서도 배우고, 급여도 최저시급 맞추고, 체계를 갖췄어요. 그때는 정말 긴장감이 컸어요.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상근활동가가 늘면서 조직 문화도 바뀌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초창기엔 활동 경험이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자연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복지기관 취업 개념으로 들어온 분들도 많아졌어요. 저는 활동가·직원 구분은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활동가는 아니잖아요”라는 분들께도 “누구보다 활동가다”라고 얘기합니다. 자립생활센터는 권익옹호를 기본으로 하는 곳이니까요.

 

사람센터만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센터를 만들었다는 게 제일 큰 특징이에요. 그들의 삶에서 나온, 타협할 수 없는 경험이 우리 활동의 방향을 잡아줬어요. 그래서 더 선명하게 탈시설과 자립을 고민할 수 있었고, 회원들과 공감할 수 있게 됐죠.

 

활동하면서 장애 여성들의 삶도 많이 보셨을 것 같습니다.

네. 교육에서 배제되고, 차별에 내몰리고, 성폭력 피해를 겪은 분들도 있었어요. 그 삶을 옆에서 보면서 “자립이란 게 단순히 제도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구나”라는 걸 배웠어요. 저에게도 사람센터 활동은 삶의 철학을 바꾼 경험이었어요

 

19년 가까이 사람센터와 함께하시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배운 건 무엇인가요?

저는 여기서 “어른이란 이런 거구나”를 배웠어요. 후원자가 아니라, 지역에서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나눠주시는 평범한 분들이 제게 어른이었어요. 저도 그런 어른이 돼야겠다고 생각했고, 사람센터는 제 인생에서 그런 배움의 공간이었어요.

 

사람센터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세요?

대구에서 탈시설을 꿈꾸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사람센터는 비빌 언덕이었다고 생각해요. 작은 힘일지라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사람센터 20주년을 맞아 바람을 전하신다면요?

저는 사람센터에서 활동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힘들고 벅찰 때도 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거든요. 앞으로도 회원들에게 든든한 언덕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상근 활동가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계속 남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