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장애인 상근활동가가 더 많아져야”
최주현(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원)


언제 어디서 태어나셨나요?

태어난 건 잘 모르겠고요, 아마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것 같아요. 일곱 살쯤부터는 한사랑 마을이라는 시설에서 지냈어요.

 

시설에 들어가기 전 기억은 있으세요?

조금 있어요. 하지만 누가 데리고 갔는지, 왜 가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다만 그 시기가 시설이 막 시작할 즈음이었던 건 기억나요.

 

그 시설에는 몇 살까지 계셨나요?

스물네 살까지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다 거기 다니면서 지냈어요.

 

언제 자립을 하게 됐나요?

스물두살 무렵이었어요. 시설에서 서울에 자립홈을 마련해 줘서 왔다 갔다 했어요. 시설에서 자립생활을 해보라고 했고, 저도 가보자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스물네 살 무렵에 완전히 하게 됐어요. 그때 대구에 오게 됐어요. 사실 얘기가 좀 긴데, 갑자기 아기가 생겨서 대구로 오게 됐습니다. 시댁이 대구라서요.

 

아기를 낳으신 건 언제였나요?

2007년 2월이에요. 출산은 시댁과 사람센터,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도움을 함께 받았어요. 특히 사람센터에서는 아기 낳을 때 같이 병원 가주고, 진료도 같이 동행해줬습니다. 당시 사람센터에 근무하는 여성이 연희 씨 한 명뿐이어서 큰 힘이 됐어요.

 

사람센터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서울 자립홈에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가끔 집회에도 나갔고, 동작자립생활센터 활동하면서 금호 씨, 시형 씨도 만났어요. 대구로 온 뒤에는 사무실에도 가끔 나갔는데, 그때는 사무실이 너무 작고 사람도 몇 명 안 돼서 이렇게 크게 될 줄은 몰랐어요.

 

출산 이후 사람센터 활동은 어떻게 이어가셨나요?

처음에는 아기가 어려서 못 나갔어요. 시댁이 아파트였는데, 계단 때문에 휠체어 이동이 힘들었거든요. 누가 와서 데려가 줘야 나갈 수 있었어요. 나중에는 봉덕동 1층 집으로 옮기면서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때는 활동보조인이 아기도 봐주면서 제가 센터에 나갈 수 있었어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네, ‘날라리 모임’ 같은 여성모임에 나갔습니다. 여자들끼리 수다 떨고, 커피 마시고, 영상도 배우고 발표회도 했어요. 그러다 학교 선배가 같은 모임에 나왔는데 임신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란 적도 있었어요

 

설립 초기 사람센터를 어떻게 기억하세요?

처음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어느 순간 입소문이 나면서 확 커졌어요. “사람센터는 젊다”라는 얘기가 있었고, 또 노금호 소장님이 대학 강의도 많이 다니면서 알려졌던 것도 이유 같아요. 무엇보다 시설도 찾아다니면서 자립을 원하는 당사자 자립을 지원해주고, 제도 개선과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센터에 자주 나가시나요?

아니에요. 장애가 심해져서 외출하기가 힘들어요. 가장 최근에 간 게 2년 전쯤이에요. 예전 작은 사무실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 지켜본 사람이 아마 저밖에 없을 거예요.

 

센터가 여성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크게 못 느꼈어요. 다만 아쉬운 건 장애인 상근자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는 거예요. 그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상근자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여성 회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잘 알겠지만, 남자 조심해야 해요(웃음). 그리고 비자금은 꼭 숨겨둬야 해요(웃음).

 

마지막으로, 사람센터 20주년을 맞아 바람을 전해 주신다면요?

20주년 축하합니다. 제가 직접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축하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