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잊지 않는 곳”
하형석(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원, 전 상근활동가)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1986년도에 대구에서 태어났어요. 학창 시절도 대구에서 보냈고, 시설에서 생활한 경험은 없었어요.

 

사람센터를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였나요?

2005년 창립 때는 몰랐고, 2007년도 즈음부터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회원 활동까지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김시형 활동가를 통해서 알게 됐어요. 상록복지관에서 치료받을 때부터 알고 있었고, 보건학교도 같이 다녔어요. 세 살, 네 살 때부터 알던 사이였죠. 그러다 “자립생활센터 같이 해보자”는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센터 활동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자립생활센터가 어떤 곳인지 아셨나요?

잘 몰랐죠. 그냥 김시형 활동가가 하자고 해서 같이 갔어요.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프로그램도 하고, 자연스럽게 집회에도 나가면서 조금씩 알게 됐어요. 부산 집회가 생각나요. 경찰과 부딪히는 걸 보고 무섭기도 했는데, “이게 장애인들한테 필요해서 하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나갔어요.

 

초기에는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셨나요?

자조모임, 회원들하고 이야기 나누기, 보치아 같은 걸 했어요. 이런 건 센터 오기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거라 새로웠어요.

 

활동지원서비스도 그 무렵 받으셨나요?

네. 센터 나오면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시작했어요. 그전엔 그런 제도가 없었거든요.

 

사람센터에서 상근활동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2008년도부터 상근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남산동 골목 사무실이었는데 공간도 좁고 인원도 6~7명 정도였어요. 일을 시작하면서 직업을 가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였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도 넓어지고, 집안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특수학교 친구들만 알던 제가 사회에서 관계를 넓힌 거죠.

 

사람센터에서는 어떤 업무를 맡았나요?

초기에는 보장구 지원 같은 걸 했습니다. 검색해서 회원들에게 알려주고, 대구시 IL센터 지원사업을 담당했어요. 이후에는 주거 복지, 주택 개조 같은 것도 했고, 활동지원사업을 오래 맡았어요.

 

15년 동안 센터의 변화를 지켜보셨는데,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뿌듯했어요. 사람센터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대구 장애인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 삶에서도 사람센터는 가장 중요한 일부였어요. 사람센터 빼놓고 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예요.

 

회원들과 함께하면서 기억에 남는 분도 있으신가요?

네, 돌아가신 최준배 씨가 기억에 남아요. 의사소통이 힘들었지만, 최중증 장애인의 탈시설 중요성을 보여준 분이었어요.

 

직장으로서 사람센터는 어땠나요?

최대한 평등한 관계로 만들려고 하는 곳이었어요. 직원이 많아지면서 상하관계가 생기긴 했지만, 조직 안에서 최대한 대화로 풀려고 했어요. 다만, 사업이 커지면서 상근자들이 개인 시간을 가지기 힘들었던 점은 아쉬워요.

 

혼자 자립해서 살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지금은 혼자 살고 있고, 한 4년 정도 됐어요.

 

상근활동을 그만두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건강이 안 좋아서였어요.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지면서 퇴사하게 됐어요. 장애인 상근활동가가 줄어드는 것은 아쉬운 점이에요. 장애인 당사자가 가장 잘 아는 부분이 있는데, 활동지원 확대와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센터와 복지관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복지관은 서비스 제공 중심이지만, 사람센터는 장애인 당사자의 생각이 주가 돼야 하고 권익옹호 활동을 함께 해야 합니다.

 

앞으로 사람센터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업이 커지더라도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사람센터 20주년을 맞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람센터 20주년을 너무 축하드리고요. 앞으로 30년, 40년, 100년까지 이어갈 수 있는 단체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