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와 장애인의 주권 / 전근배
“정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는 정해져 있는 것을 하는 게 아니다. 정해져 있는 걸 하는 것은 행정이다. 정치는 행정과는 달리 없는 길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내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게 정치이고,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다. (중략)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의지와 방향이다. 능력은 그다음의 문제다.” - 이재명 (2025년 4월 15일 출간 저서 『결국 국민이 합니다』 중)
“간병인이 지금 너무 비싸다는 거 아니에요? 그 비싼 이유가 일단 노동 강도가 너무 세고 구하기 어렵고 강도가 세니까 구하기 어렵고 이게 악순환이더라고. 결국은 저는 이게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꿔서, 알바로, 수요일 날, 저녁 때만 가능, 4시간, 시간당 단가 얼마. 근데 (이런 식이면) 쪼개지잖아요. 쪼개지면은 하기가 어렵잖아요. 사실 그 수요가 또 없잖아요. 이거(수요)를 결국은 묶어야 된다는 거예요. 소위 플랫폼이 커지면 나는 2시간 알바 삼아 2시간 할래 이럴 수 있잖아요, 많기만 하면. (중략) 하루 종일 한 사람이 붙어있는 건 아니잖아요. 또 보고 이 사람 해주고 이렇게 몇 명을 동시에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가 보기에 효율적으로 싸게 운영이 가능할 것 같아요.” - 이재명 (2025년 12월 16일 국무회의)

사진. 이재명 대통령이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에 글의 제목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와 장애인의 주권'이 적혀 있다. 아래에는 사진 출처인 비마이너가 적혀 있다. (이미지 출처 : 비마이너)
정치는 늘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말을 갖는다. 어떤 시대에는 ‘산업화’가, 또 어떤 시대에는 ‘민주화’가 자주 쓰였던 것처럼 지금의 ‘실용’이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4년 7월 당대표로 출마하며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바로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어 2025년 2월 국회 연설에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먹사니즘’을 포함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잘사니즘’을 새 비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윽고 ‘실용주의’를 내세운 ‘국민주권정부’가 탄생했다. 이념보다는 현실, 선언보다는 실행, 갈등보다는 조정을 떠올리게 하는, 상식적이어 보이는 이 용어를 나는 ‘정치적 갈등은 최소화하면서 성과를 관리하는 국정 운영 방식’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주권정부에서 말하는 주권자가 누구인지, 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그 실용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국민’과 ‘실용’ 사이에서 권리의 언어와 관리의 언어가 역동하는 것이다.
낙관적이지 않다. 출범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대통령이 말한 정치의 핵심인 ‘의지와 방향’이 장애인 정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123대 국정과제에도, 정부 예산안에도 윤석열 정부와 구별되는 방향을 찾기 어렵다. 활동지원 급여를 빼어 쓰는 말 뿐인 ‘윤석열표’ 개인예산제는 유지되었다. 인건비 등 자연 인상이 불가피한 항목을 제외한 이동, 주거, 탈시설, 자립생활에 관한 예산은 사실상 제자리에 머물렀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이대로라면 올해 3월 시행되는 ‘통합돌봄지원법’(「의료ㆍ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은 기존 서비스를 재배열하고 연계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내년 3월 시행하는 ‘자립지원법’(「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도 활동지원제도와 서비스 종합조사의 전면 개편이 없이는 마찬가지 처지다. 장애인 권리 중심의 정책 전환과 예산 확대가 없는 ‘통합돌봄’과 ‘자립지원’은 오히려 중증장애인 배제와 시설수용을 더 정교하게 합리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고병권(읽기의집)은 얼마 전 1000일을 맞은 장애인들의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두고 말했다. ‘함께 살아야겠습니다’라는 마음을 품은 사람들, 그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자 한 사람들,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며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살고자 한 사람들, 이 가장 소박한 요구를 해온 사람들이 지금 시대의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가 ‘되고 말았다’고. 지금 이재명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가장 소박한 요구’로 이해하는가, 아니면 ‘가장 급진적인 요구’로 이해하는가 묻고 싶다.
지금 정부의 실용주의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목표한다면서도 정작 탈시설 관점은 거부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안 반대 의견에서도 드러난다. 실용주의는 그 자체로 중립을 뜻하지도, 책임을 뜻하지도 않는다. 이런 실용주의라면 ‘실리주의’, 또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관료주의’와 ‘비장애 중심주의’의 다른 말이라 해도 손색없다. 국민주권이라는 정치적 표상과 달리, 장애인의 삶에서는 국민주권이 실질적으로 체감되지 않는 괴리만 커질 뿐이다.
장애 문제의 사회적 원인과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 실용주의 정부의 장애인 정책은, 참여율도 효과성도 저조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채 그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했던, 시설 대상의 예방적 코호트격리를 떠올리게 한다. ‘주권자’란 말이 가장 어색한 이들, 바로 그 사람들이 국민주권정부가 말하는 ‘실용’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두려운 것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근본 없는 변화다. 더 정확히는 근본을 감추는 변화다.
※이 글은 비마이너에도 기고되었습니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9468)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와 장애인의 주권 / 전근배
“정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는 정해져 있는 것을 하는 게 아니다. 정해져 있는 걸 하는 것은 행정이다. 정치는 행정과는 달리 없는 길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내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게 정치이고,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다. (중략)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의지와 방향이다. 능력은 그다음의 문제다.” - 이재명 (2025년 4월 15일 출간 저서 『결국 국민이 합니다』 중)
“간병인이 지금 너무 비싸다는 거 아니에요? 그 비싼 이유가 일단 노동 강도가 너무 세고 구하기 어렵고 강도가 세니까 구하기 어렵고 이게 악순환이더라고. 결국은 저는 이게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꿔서, 알바로, 수요일 날, 저녁 때만 가능, 4시간, 시간당 단가 얼마. 근데 (이런 식이면) 쪼개지잖아요. 쪼개지면은 하기가 어렵잖아요. 사실 그 수요가 또 없잖아요. 이거(수요)를 결국은 묶어야 된다는 거예요. 소위 플랫폼이 커지면 나는 2시간 알바 삼아 2시간 할래 이럴 수 있잖아요, 많기만 하면. (중략) 하루 종일 한 사람이 붙어있는 건 아니잖아요. 또 보고 이 사람 해주고 이렇게 몇 명을 동시에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제가 보기에 효율적으로 싸게 운영이 가능할 것 같아요.” - 이재명 (2025년 12월 16일 국무회의)
사진. 이재명 대통령이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에 글의 제목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와 장애인의 주권'이 적혀 있다. 아래에는 사진 출처인 비마이너가 적혀 있다. (이미지 출처 : 비마이너)
정치는 늘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말을 갖는다. 어떤 시대에는 ‘산업화’가, 또 어떤 시대에는 ‘민주화’가 자주 쓰였던 것처럼 지금의 ‘실용’이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4년 7월 당대표로 출마하며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바로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어 2025년 2월 국회 연설에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먹사니즘’을 포함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잘사니즘’을 새 비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윽고 ‘실용주의’를 내세운 ‘국민주권정부’가 탄생했다. 이념보다는 현실, 선언보다는 실행, 갈등보다는 조정을 떠올리게 하는, 상식적이어 보이는 이 용어를 나는 ‘정치적 갈등은 최소화하면서 성과를 관리하는 국정 운영 방식’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주권정부에서 말하는 주권자가 누구인지, 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그 실용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국민’과 ‘실용’ 사이에서 권리의 언어와 관리의 언어가 역동하는 것이다.
낙관적이지 않다. 출범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대통령이 말한 정치의 핵심인 ‘의지와 방향’이 장애인 정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123대 국정과제에도, 정부 예산안에도 윤석열 정부와 구별되는 방향을 찾기 어렵다. 활동지원 급여를 빼어 쓰는 말 뿐인 ‘윤석열표’ 개인예산제는 유지되었다. 인건비 등 자연 인상이 불가피한 항목을 제외한 이동, 주거, 탈시설, 자립생활에 관한 예산은 사실상 제자리에 머물렀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이대로라면 올해 3월 시행되는 ‘통합돌봄지원법’(「의료ㆍ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은 기존 서비스를 재배열하고 연계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내년 3월 시행하는 ‘자립지원법’(「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도 활동지원제도와 서비스 종합조사의 전면 개편이 없이는 마찬가지 처지다. 장애인 권리 중심의 정책 전환과 예산 확대가 없는 ‘통합돌봄’과 ‘자립지원’은 오히려 중증장애인 배제와 시설수용을 더 정교하게 합리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고병권(읽기의집)은 얼마 전 1000일을 맞은 장애인들의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두고 말했다. ‘함께 살아야겠습니다’라는 마음을 품은 사람들, 그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자 한 사람들,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며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살고자 한 사람들, 이 가장 소박한 요구를 해온 사람들이 지금 시대의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가 ‘되고 말았다’고. 지금 이재명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가장 소박한 요구’로 이해하는가, 아니면 ‘가장 급진적인 요구’로 이해하는가 묻고 싶다.
지금 정부의 실용주의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목표한다면서도 정작 탈시설 관점은 거부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안 반대 의견에서도 드러난다. 실용주의는 그 자체로 중립을 뜻하지도, 책임을 뜻하지도 않는다. 이런 실용주의라면 ‘실리주의’, 또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관료주의’와 ‘비장애 중심주의’의 다른 말이라 해도 손색없다. 국민주권이라는 정치적 표상과 달리, 장애인의 삶에서는 국민주권이 실질적으로 체감되지 않는 괴리만 커질 뿐이다.
장애 문제의 사회적 원인과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 실용주의 정부의 장애인 정책은, 참여율도 효과성도 저조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채 그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만이 유일했던, 시설 대상의 예방적 코호트격리를 떠올리게 한다. ‘주권자’란 말이 가장 어색한 이들, 바로 그 사람들이 국민주권정부가 말하는 ‘실용’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두려운 것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근본 없는 변화다. 더 정확히는 근본을 감추는 변화다.
※이 글은 비마이너에도 기고되었습니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9468)